2019-08-25

오마이뉴스에 올라온 기사 '집에서 죽고 싶다던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을 보고

기사 제목을 보자마자 딱 2011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다.

1939년 생으로 걷기가 불편해 평소 매주 혹은 매월 다니던 정형외과에 가서 검사하니 큰 병원에 가라고 해서 대학병원에 가 보니 폐암 4기라고 이미 전이 되어 어렵다는 판정을 받았었다.

단지 걸음걸이가 불편해 왔을 뿐인데, 암이라니. 그것도 말기라니. 병원을 처음 온 것도 아니고 몇 년 동안 계속 병원을 다녔는데, 그 사이 아무런 말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말기라 '치료해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대학병원 의사는 가족을 모아 두고 이야기 했다. 환자 본인도 이미 자신의 상태는 알고 있었다.

10월에 처음 대학병원에서 방사능 치료를 해야 한다고 할 때 본인도, 가족도 방사능 치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좀 편안한 연명치료를 하는 다른 대학병원을 소개 받아 병원을 옮기고 시간을 갖으며 말 그대로 연명치료를 하려는데, 병이 급속히 진행되어 11월 16일에 돌아가셨다.

병원을 옮기고 좀 더 여유가 있을 줄 알았다. 이것 저것 챙기고 정리한다 생각했고, 일도 있어 자리를 비운 사이 점심 시간 좀 전에 위중하다는 연락을 받고 서둘러 병원으로 갔지만 임종을 지키진 못했다. 다행히 남동생과 큰 이모부가 곁에 있어 다행이었다.

병원에서 한 달은 좋아보이지 않은 시간이었다. 일이니까, 다들 그런 사람들이 오는 곳이고 언제나 일어나는 일이니 그냥 일상이었다.
물론 나는 아니었지만.

옮긴 병원에서 돌아가시기 며칠전 치료를 위해 삽관하는데, 고통에 몸부림치는 아버지를, 의사를 도와 잡고 '조금만 참으라'고 했던 일이 가장 안타까운 기억이다.

그렇게나 빨리 돌아가실줄 알았다면 옆을 지키고 있었어야 했었는데, 그리고 병원 치료가 필요하지도 않았는데 굳이 낫선 곳에서 그렇게 불편하게 있을 필요도 없었을텐데 싶었다.

계속 투약도 하고, 대소변도 받고 해야 해서 병원이 아니고는 너무 힘든 일이었을거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라 위안이 되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기사를 읽다 보니 어떤게 삶을 마무리해야 하나란 다시 한번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https://www.ymca.pe.kr/2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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