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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5

살아남은 자의 슬픔

며칠째 해안선 투어 2024를 쓰려고 하고 있다.


불현듯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떠 올랐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베르톨트 브레히트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나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https://blog.naver.com/hyerang58/222761455737





긴 시의 한 부분인 줄 알았었는데, 이게 전부였다.

전에도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놀랐다.

2023-08-05

깊은 잠을 자는 이들의 여름

오래동안 같이 일하는 동료의 부친상


오랜만에 찾은 영락공원은 매미가 조문을 대신하고 있었다.





2023-03-03

아리무라 카스미

 아침 출발하기 전 본 인스타그램에서 마음에 드는 아리무라 카스미 새로운 포즈 사진을 받았다.



2023-02-21

가수 요조의 서울예대 2009년 5월 학보 컬럼

 할 일을 미뤄두고 커뮤니티를 전전하다 읽은 이야기.

원본 글을 찾을 순 없어서 내용만 가져 옵니다.
이 글을 읽고 글쓴이를 검색해 봤음




2009년 5월 서울예대 학보에 실린 신수진(요조)의 칼럼.



빛나는 오늘의 발견
빛나는 오늘의 나

하루는 내 동생과 한 이불 속에서 밤이 새도록 수다를 떨었다. 당시 그녀는 고3이었고 나는 스물일곱. 8살 터울이었지만 우리는 서로의 나이 차이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수학 성적이 좋아서 이과를 선택한 수현이는 고3이 되었지만 한달인가 지나서 갑자기 사진을 공부하고 싶다고 부모님 속을 엄청 썩이고 결국 사진기를 손에 쥔 지 4개월 정도 지났을 때였다.

'중앙대에 가고 싶어, 언니. 근데 사진과는 서울캠퍼스가 아니고 지방에 있어서 집에서 통학하기 쉽지 않을텐데 어쩌지?''그럼 나랑 둘이 따로 나와서 살자. 언니가 얼른 앨범내고 돈 벌고 차 뽑아서 데려다줄게.''내가 언니랑 따로 산다고 하면 엄마가 퍽이나 좋아하겠다.''걱정마, 너 사진 공부 하는 것도 내가 우겨서 허락받은건데... 어디쯤에 집을 구하면 니가 학교 다니기에도 내가 홍대 가기에도 편할까?‘

다음날 동생은 청량리역으로 사진을 찍으러 다녀오겠다고 말했고 난 만원인가를 쥐여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날 저녁, 그녀는 청량리역에서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내게 꼭 필요한 존재였다. 내가 계란 흰자를 좋아하고 그녀는 계란 노른자를 좋아하기 때문일지도. 아니면 나는 닭가슴살을, 그녀는 닭다리를 좋아해서 치킨을 한마리 시켜도 사이좋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엄마가 밥먹으래'라는 한마디가 하루 중 우리의 유일한 대화일 때도 많았고 내 옷을 말없이 가져가는 것에 미칠듯이 분노하며 엄마가 내 동생을 혼내는 날엔 나 역시 엄마편을 주로 들곤했지만 나에게는 역시 내 동생 뿐이었다.

청량리역에서 사진을 찍던 동생은 이유없이 포크레인에 깔려 즉사했다. 병원에는 경찰도 오고, 포크레인 회사 사람, 철도청 사람, 방송국, 신문 기자들이 왔다. 3일이면 충분한 장례식장에 11일을 머물렀다. 너무나 힘들었다. 하지만 나를 가장 많이 괴롭혔던 것은 엄마가 했던 말이었다. 사진공부를 시키지 않았다면 수현이는 죽지 않았을거야. 밤이 오면 옥상에 올라가 많은 것을 생각했다. 그녀가 죽기 바로 전 날, 새벽까지 우리가 그렸던 내일이 난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중앙대에 갈 수 없고, 사당 근처에서 같이 살 수도 없고 내가 돈을 벌고 차를 뽑아도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집에 돌아와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했다. 엄마는 매일 아침밥을 지어야 했고 아버지는 매일 아침 출근을 했다. 나는 바로 제주도에서 공연이 생겨 웃는 얼굴로 <바나나 파티>를 불러야 했다.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었다.

나는 계속 '내일'에 대해 생각했다. 누군가 내게 '내일은 뭐해?' 하고 물어오면 '내일? 내가 어떻게 알아. 바로 죽어버릴 수도 있는데.' 하고 이야기했다.

동생을 잃고 나서 얼마간 이루 말할 수 없는 비관론자가 되었다. 죽음은 이제 더이상 나에게 쪼글쪼글 할매가 되어서야 맞게 되는 일이 아니었다. 바로 코앞에서 나를 언제나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로 두렵지도 않았고, 늘 내일 죽을 사람처럼 굴었다. 수중에 있는 돈은 그냥 다 써버렸고, 살찔까 봐 조심스러워했던 식성도 과격해졌다. 술도 퍼마시고 담배도 피워댔다. 그렇지만 나는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내일'이라는 것을. 동생뿐이었던 내게 아무렇지 않게 그녀를 홀랑 데려가 버렸던 신의 의도를. 죽기 전에 우리가 보낸 새벽을. 그녀의 죽음을. 사진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죽지 않았을거라는 엄마의 절규를. 그녀의 죽음을 통해 나는 무언가를 깨달아야 했고 그걸로 내 삶이 변화해야 했다. 깨닫지 않고서는 그녀의 죽음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일 년 반 정도가 지났다. 그리고 나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내 동생의 죽음의 교훈을 알아내었다. 그 교훈은 민망할 정도로 너무나 당연해 모두가 간과하고 있던 시시한 진실. 그것은 바로 '빛나는 오늘의 발견'이고 '빛나는 오늘의 나' 였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내가 내 동생을 잃고서야 이해할 수 있었던 것. 오늘에 충실하는 것. 이것이 여러분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다. 나는 여러분이 내일을 위해서 오늘을 고문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여러분이 오늘 먹고 싶은 음식을 먹기를 바라고, 너무 입고 싶어 눈에 밟히는 그 옷을 꼭 사기를 바란다. 나는 여러분이 늘 보고 싶지만 일상에 쫓겨 '다음에 보지 뭐' 하고 넘기곤 하는 그 사람을 바로 오늘 꼭 만나기를 바란다. 나는 여러분이 100만원을 벌면 80만원을 저금하지 않고 50만원만 저금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사고 싶은 옷을 참고 먹고 싶은 음식을 참으며 만나고 싶은 사람을 다음으로 미루는 당신의 오늘에 다 써버리기를 바란다.

나는 당신이 사진을 찍을 때 행복하기를 바란다. 나는 당신이 그림을 그릴 때 행복하길 바라고, 당신이 무대 위에서 대사를 읊조리고 동선을 고민할 때 행복하기를 바란다. 이 사진이 사람들의 호응을 살지, 이 그림이 얼마나 비싸게 팔릴지, 당신의 연기를 사람들이 좋게 봐줄지를 고려하기보다 그저 당신이 원해왔던 행위를 하는 바로 지금 이 순간 당신의 행복을 더 우선했으면 한다.

내일 죽어도 좋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당신의 오늘이 완성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오늘 노래하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고, 오늘 수중에 돈이 없을 때면 맛있는 라면을 먹고 돈이 많을 때 내가 좋아하는 봉골레 스파게티를 먹는게 행복하다. 사랑하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거나하게 취하고 다음날 눈을 떠 조금 창피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 행복하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2009년 5월 22일 뮤지션으로 살아있는 것이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

'사진공부를 시키지 않았다면 수현이는 죽지 않았을 거야' 하고 이야기했던 엄마는 조금 틀린 것 같다. 수현이는 그 날, 행복했을 것이다. 그렇게 원했던 사진을 그 날도 찍을 수 있어서, 찍고 싶었던 청량리역을 찍고 있어서, 내가 쥐여준 만원으로 맛있는 밥을 먹어서 행복했을 것이다.

얼마전 차 안에서 그냥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스피노자가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을 인용하는 것을 듣고 나는 엉엉 울었다. 이제야 이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며 흘린 눈물이었다. 나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내일 모레 공연을 위해 오늘 합주를 할 것이다. 여러분도 그렇게 해주길 바란다. 나는 당신의 오늘이 행복하길 바란다. 당신의 내일 같은 건 관심도 없다.



신수진(요조)

2007년 8월 14일 서울신문 사고 기사



(2024년 3월 9일 추가)

[청춘페스티벌 강연] 만약 오늘이 마지막 하루라면 - 가수 요조
2011-08-19



(2026년 6월 2일)
요조의 "좋아해"라는 노래의 새 뮤직비디오를 보게 되어 다시 찾아봤다.


2021-06-28

사랑, 기억하시나요?

 '초시공요새 마크로스'에서 린 민메이가 총공격할 때 불렀던 노래를 커뮤니티 게시글을 읽다 떠올리고 유튜브에서 찾아 들었다.

어렴풋이 떠올랐던 음과 가사가 노래를 듣기 시작하자 명확해졌다.

다른 애니메이션 주제가들과 함께 들으면서, 이 노래를 들을 때 왠지 눈물이 고였다.

게시글 댓글 중 '일본에 무슨 일이 생긴거야'란 글이 있었는데, 공감하는 글이다.

그 시절 본 받아야할 대상 중 하나로 언젠가 발꿈치를 따라 갈 수 있나 생각했었는데, 지금 상황을 보면 산전벽해다.

일본 상황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

그럴 이유도 없다.


그 시절이 지나갔다는 것, 다시는 돌아 올 수 없다는 것, 이게 마음에 닿아서인듯 하다.

최근 들어 잘몰랐던 것들을 하나씩 알아가고 있다.

나카모리 아키나

아무로 나미에

어째 다 일본과 관련 있는데, 그렇게 영향을 받았었기 때문이다.



2020-06-02

병원 퇴원과 입원

5월 16일 급한 전화가 왔습니다.
새벽에 장인이 아파 119 구급대를 불러 양산부산대병원 응급실로 갔다는 이야기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들었습다.
새벽 시간을 지나 아침 일어나는 시간을 기다려 연락한 것이었습니다.

급히 눈꼽도 떼지않고 쫓아 갔더니 다행히 지금은 안정되었다고 했습니다.

당분간 입원을 해야 한다고 채비하려 집과 병원을 왔다 갔다 하느라 오랜만에 범칙금 통지서가 날아왔습니다.

대학병원의 치료비는 그나마 건강보험으로 견딜만 하지만 아직 간병비는 오롯이 가족의 부담이었습니다.

많이 호전되었지만 아직은 치료를 더 진행해야 해서 집 근처 요양병원에 모셨습니다.


진작부터 아팠고, 알았으나 대처하지 않으니 일이 크게 벌어져 더 많이 아프고 돌이킬 수 있는 상황까지 전개되었습니다.
또 그럴테지요.

2020-04-18

4월이 어떻게 지나는지도 모르게 지나갔다

언젠가 어떻게든 이런 날이 올거라고 알고 있었고, 때로는 어떤 모습일까 생각도 해 봤었는데, 막상 이런 날이 올 줄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 같다.

다행이란 생각을 휠씬 더 많이 한다.



15년, 또는 30년 뒤에 다시 볼 수 있길 원한다.

2018-07-07

은수미 의원 필리버스터 마무리 말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60224500155


은수미 - 위키백과

“우리는 아무리 강해도 약합니다. 두렵지 않기 때문에…나서지 않는 게 아닙니다. 두렵지만 나서야 하기 때문에 나서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용기입니다. 참된 용기를 가진다는 것과 참된 용기를 왜 가지게 됐는지는 정치인한테는 매우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저 같은 초선 비례의원에게는 ‘내가 이 자리에 서야 되는지’ 혹은 ‘내가 용기를 더 내야하는지’ 항상적인 질문을 합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20대 때 간절한 것 이상으로 간절하다는 사실입니다.

더 이상 청년들이 누구를 밟거나 누구에게 밟힌 경험만으로 20대를 살아가지 않기를 원합니다.

‘청년’을 넣고 네이버 검색을 하면 (연관)검색어 1위가 ‘알바’일거라고 추정했는데 ‘글자 수 세기’였습니다. 20대 청년한테 이 이야기하면 다 웃습니다. 회사에 지원하는데 1000자 이내로 쓰라고 해서 글자 수 세기 프로그램을 돌립니다. 청년하면 떠오르는 게 젊음도 아니고, 정열도 아니고, 축제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고, 욕망도 아니고… 그런 모습으로 살게 해서는 안됩니다.

특히 자기 인권과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를 뿐만 아니라 타인의 권리를 보장하기도 어렵습니다. 우리의 미래가 그렇게 돼서는 안됩니다. 왜?

저도 대한민국을 바꾸는 흐름을 해봤습니다. 저 역시 젊은 시절에 대한민국을 바꾸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제가 나이가 들면 우리 아이들이 저보다 훨씬 더 찬란한 세상을 향해 날아갈 거라고 믿었습니다. 제가 대학에 처음 들어갔을 때 봤던 것은 전경으로 대표되는 독재였는데… 그리고 2학년이 되면서 들려온 소문은 누가 죽었다더라, 누가 강간을 당했다더라, 이런 거였는데 그것을 넘어서 그런 경험을 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가 열릴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1987년 (민주화항쟁) 20주년 기념식에 있었던 2007년, 그때 세종문화회관에서 기념식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건너편에서 비정규 노동자하고 모임을 갖고 있었어요. 기념식 현수막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기 지금 나하고 같이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힘든 분들에게 도대체 1987년은 어떤 의미일까. 그 친구의 어머니 아버지가 거기 있을 수도 있고, 그분들이 거기 있었을 수도 있는데. 이제 끝나가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제서야 참으로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나는 세상이 민주화되는데 기여했고 할 만큼 했노라 했는데 그렇지 않구나. 그 민주화된 세상에서 누구는 비정규직으로 살고 누구는 청년 실업자로 살고, 누구는 자살해야 하고. 그래서 세상을 바꿔야 되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테러방지법을 이야기하면서 왜 이런 이야기를 드리냐하면, 사람은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밥 이상의 것을 배려해야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헌법이 그래서 있습니다. 헌법에 일자리, 노동, 복지 제공한다, 또 그 이상의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 불가침의 인권, 행복할 권리가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도 탄압받아서는 안 되고, (눈물로 잠시 말을 잇지 못함) 아휴. 제가 좀 지쳤나봐요.

누가 그래요. ‘대테러방지법 돼 뭐, 사람들이 밥은 먹고 살겠지.’ 다시 말씀드리지만, 헌법에 보장된 시민·주인으로서의 국민은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언론의 자유를 누려야 하고, 표현의 자유를 누려야 하며, 어떤 억압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의 운명을 자기가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것을 못하게, 할 수 있는 법이라고, 그런 의혹이 있는 법이라고, 그렇게 누차 얘기를 하고 있는데, 끊임없이 주장을 하는데, 제발 다른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얘기하고 있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을 위해 일한다고 하면 부정하지 않겠다, 내가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다른 방향이 있다, 그러니 나와 박근혜 대통령이 다름을 인정하거나 여당과 야당이 다름을 인정하고 제발 이야기를 해보자, 어떻게 하면 사람이 사람답게 단 한명도 인권을 훼손당하지 않으면서 자기 운명을, 자기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지. 그렇게 2012년 이후에 박근혜 정부에게 요구했다고 생각합니다. 대테러방지법을 비롯해서 다른 법에 대해서.

박근혜 대통령은 유능하고 저는 무능한 탓에 항상 발목을 잡는 것처럼 소개가 되지요. 하지만 저는 포기하지 못합니다. 저의 주인이신 국민이 살아가야 되니깐요. 그분들은 포기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저는 돌아설 수 있는 자리가 있는 사람일지 모르지만, 그분들은 그런 자리가 없습니다. 헬조선을 외치는 청년들은 도망치는 거 외에는 둥지가 없는 사람입니다. 정치도, 정치를 하는 사람도 자기 둥지를 부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고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도 자기 둥지를 부수고 같이 하려는 노력을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제가 이렇게 좀 버틴 게 당에 도움이 됐는지 모르겠네요. 어쨌든 저로서는 최선을 다했고요. 제발 다시 한 번 부탁 드립니다. 저는 대한민국 국민을 믿습니다. 이 법이 통과되어도 언젠가는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또 누군가, 고통을 당해야할지도 모릅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덜 고통받는 방법을 제발 정부·여당 조 찾읍시다.

이것은 저는, 사람을 위하는 것은, 약자를 위한 정치는... 여당도 야당도 없고 보수도 진보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직 국민을 위해서 생각하고요. 박근혜 대통령도 청와대에서 생각하는 국민과 제가 현장에서 직접 뵙는 국민이 다르다, 이렇게 다른데, 어떻게 하면 같이 살까. 이 생각 좀 합시다. 피를 토한다든가, 목덜미를 문다드가, 이런 날선 표현들 말고 어떻게 하면 화해하고 사랑하고 함께 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응원하고 격려할 수 있는지, 힘내게 할 수 있는지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끝으로 저의 필리버스터를 끝냅니다.“



2009-05-23

노무현 대통령 서거

오늘(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 근처 뒷산에서 투신해 서거했다. 처음으로 내가 투표해 당선된 대통령이었고, 민주주의와 원칙을 지키는 것이 좋지만은 않은 것이라는 걸 보여 준 신념있고 믿을만한 사람이었는데,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또 다른 내막이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마무리를 짓지 않고 떠난 당신이 아쉽다. 


지금은 약간 진정된 저녁이 되었다.

노무현은 로마를 개혁하고 원로원에서 암살당한 카이사르가 아닐까? 새 시대를 꿈꾸고 결국 이루어 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누리지는 못하고 다음 세대에게 나머지를 미뤄야만 했던 카이사르. 충실하지만 영리한 옥타비아누스가 나와 원칙에선 좀 벗어날지 모르겠지만, 카이사르의 뜻을 실현해야할 차례다.


김어준-내가 반했던 남자


2021-01-28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밝혀진 것은 많지 않다.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